서울 밖 덕후

서울을 그만두다 | 완주 감자

작가의 말

저는 사람들이 가득 찬 지하철에서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지그시 눈을 감습니다. 내 피부에 무언가가 갑작스레 닿을 때 화들짝 놀라는 예민한 인간이기에,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전철의 관성을 느끼며 중심을 잡습니다. 그러다 눈앞이 밝아지는 것을 느끼면 그제서야 눈을 뜹니다. 전철이 한강 위를 지날 때엔, 조그마한 창문일지라도 최대한 눈에 담으려 합니다. 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어김없이 공황이라는 동반자가 찾아오기에, 그 미약한 개방감이라도 느껴야 살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퇴근 후 축축한 반지하방으로 돌아오면 전철에게 빼앗기고 남은 초라한 기력을 짜내어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독립적인 창작자로서 살고 싶은 막연한 꿈을 갖고 상경했었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들어간 회사는 최저시급도 안 되는 적은 월급마저 간단하게 미루기 일쑤였고, 어두운 반지하 집 이웃들은 항상 날이 서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친한 선배가 완주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결국 만성적인 번아웃을 버티지 못한 저는 완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귀촌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귀촌하면 생각하는 자연 풍광은 사실 그다지 새롭지 않았습니다. 자연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차피 촌이라면 자연은 충분히 풍요로우니까, 귀촌 로망이 있었지만 지역을 딱히 골라놓지 않았습니다. 완주로의 이주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장소성보다 그곳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 친구들은 건축을 전공했으니 건축사사무소로 취업을 하기로 했고, 당연히 대부분의 사무소는 서울이었기에 자연스레 서울로 흘러들었습니다. 하지만 완주에서는 자신이 살 곳을 직접 선택한 귀촌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완주에서 그들이 삶을 선택하는 방식에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타인이 바라는 것을 곧잘 채워주는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수동적인 삶이 익숙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완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이었습니다. 제가 꿈꾸던 인간상을 만났다고 느꼈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습니다. 누군가는 떠나가고 누군가 새로이 흘러오는 완주에서 적어도 지금은 나에게 필요한 삶의 방식을 찾았기에, 사회가 정해주는 삶이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 이야기가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면서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작품 소개

‘서울을 그만두다’는 도망치듯 귀촌을 하게 되는 청년, ‘상빈씨’의 이야기를 그린 웹툰입니다. 이 작품은 귀촌이라는 단어 속 로망을 그리는 작품은 아닙니다. 단순히 농촌지역이라는 장소성을 묘사하기보다는 삶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과 불안을 지역 이주라는 수단을 통해 극복해 나가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사회가 마련해 놓은 삶의 방식을 따르는 것에 모호한 의문이 들 때, 명확하진 않지만 하나의 해답으로 쓸 수는 있을법한 귀촌인들의 삶과 생각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귀촌을 홍보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하여 크게 고민하게 되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그때 이 작품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에 자그마한 단서로써 쓰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작품 해설(기획의도 및 설명)

“1_회피는 소모된 책임감의 결과”

작중에서 상빈은 서울에서의 고된 삶을 뒤로하고 완주로 떠나는 것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충분한 고찰은 없었습니다. 그저 고통을 주는 요소로부터 멀리 벗어나는 것만이 상빈의 의지였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회피를 무책임한 행동으로 정의하곤 합니다. 힘든 상황을 회피하지 않는 것을 성공이라 여기고, 포기하는 것은 실패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나약해진 개인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또한 그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지는 예상할 수 없습니다. 버티는 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는 않으며, 회피하는 것이 회복을 보장하지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