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이 좋아, 서울이 좋아? 서울.

대전이 좋아, 경기도가 좋아? 경기도.

대전이 좋아, 인천이 좋아? 인천.

대전이 좋아, 제주도가 좋아? 제주도.

Last minute.

제주도가 좋아, 대전이 좋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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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use.

가장 행복해야 할 서른 중반, 나는 서울에서 행사 기획자로 일하고 있었다. 자신을 불태우듯 일한 끝에 탈진과 무력감에 빠졌고, 결국 2년을 채우지 못한 채 퇴사했다. 남은 계약 기간은 불과 두 달이었다. 국외에 나가 혼자 살아갈 용기는 없었기에, 나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자연에 몸을 기대며 모든 것을 맡겨 보고 싶었다.

나는 원래 한 곳에 오래 정착하는 성향이 아니었다. 고향인 대전을 떠나 서울과 경기도, 인천을 전전하며 직장을 옮겼다. 그러다 서울에서 내 인생 가장 큰 행사를 치르고 난 뒤, 또다시 도망치듯 자연을 찾아 제주로 향한 것이다. ‘여기에 머문다면 괜찮아질지도 모른다.’는 간절한 믿음과 함께. 덕분에 제주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여러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주에서도 기대와 달리 자꾸 모가 났다. 직장 생활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생긴 상처가 아직도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흉터는 흔적을 남겼다. 내가 중요하게 여겨 온 가치관은 그들의 자유로운 “뭐 어때?”라는 태도와 충돌했고, 결국 또다시 어긋나고 말았다. 제주도 또한 내게 기대했던 낯선 자유가 아닌, 익숙한 사회의 단면이었다.

세 달쯤 지난 뒤, ‘다시 떠나야 할까?’라는 물음이 나를 찾아왔다. 그럴 때면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묻곤 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어차피 어디를 가도 사람 사는 사회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주민의 삶보다는, 뿌리 내리고 살아온 원주민으로서의 삶이 더 낫지 않을까.

이제는 나를 가라앉히고, 흔들림을 줄이며, 기대지 않고도 스스로에게 “그래도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곳. 그곳은 다름 아닌 ‘고향, 대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