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압연을 견디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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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 쇳물은 °C가 넘는 온도에서 뜨겁게 달궈진다 그. 불덩이를 식히면 단단한 슬래브(slab)가 된다. 압연은 이 무겁고 거대한 슬래브를 레일 사이로 밀어 넣는 과정이다. 두께가 200mm에 이르던 쇳덩어리가 수십 번의 회전 롤러를 통과하며 2~3mm 두께의 얇은 강판이 된다. 롤러 사이의 압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번의 통과마다 수천 톤의(t) 힘이 가해진다. 슬래브는 그 압력을 받을 때마다 길어지고 넓어지며, 내부의 불순물이 깨지고 조직이 치밀해진다.

온도와 속도 압력을 정밀하게 조율하지 않으면 금이 가거나 뒤틀려 쓸모를 잃는다. 압연은 철에게 가혹하다. 뜨거운 열과 무거운 압력, 그리고 연속된 변화. 하지만 이 과정을 견뎌낸 철만이 자동차의 차체가 되고, 다리의 기둥이 되며 거대한 선박의 뼈대가 된다.

사람의 삶도 비슷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을 납작하게 누르는 압력을 만난다 그 압력이 너무 커서 무너질 것 같아도, 그 과정 속에서 불순한 마음은 깨지고, 더 단단하고 유연한 형태를 얻게 된다. 포항이라는 도시에서, 나와 또 다른 누군가는 지금 이 압연 을 견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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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희진

죽을 것 같아도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우울증을 얻고 나서 갖가지 증상들에 나는 몸부림치고 있었다. 자다가 소리를 지르면서 깨는 건 다반사고, 평균 수면 시간이 들쭉날쭉 해졌다. 어떤 날은 4시간도 겨우 자다가 어떤 날은 하루에 신생아처럼 잠만 잤다. 식욕이 줄어서 몸무게가 5킬로나 빠졌다. 앙상해진 손목을 보면서 나를 통통히 살찌울 계획을 세워봤다.

먹기 힘들어도 먹어야 살아져. 남편이 한 말을 매일 되새기며 하루에 세 번씩 밥 먹는 걸 일처럼 삼았다. 아침은 무조건 먹기, 씹는 게 어려우면 우유라도 한 잔 마시기. 점심은 되도록 밥으로 먹기. 먹기 힘들 땐 배달도 시켜 먹기. 저녁은 남편과 외식하기. 남편이 일가서 혼자 먹을 땐 든든하게 먹으려고 애쓰기. 이런 다짐들을 용지에 적고 벽에 계속 붙여댔다.

“먹어야 사는거야. 먹어야...”

나는 평생 저체중으로 살았지만, 나를 살찌울 생각은 안 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끼니를 억지로 때우면서 소홀히 했다. 가족들과 먹는 식사가 불편해서 대충 입에 욱여 넣고 방으로 들어갔다 체한 것 같은데도 가슴을 툭툭 내리치면서 소화제도 먹지 않고 대충 잠에 들어서 밤새 끙끙 거리곤 했었다.

“나를 돌보지 않았구나....”

아침이 지나고 해가 살짝 들었다 오늘은 흐린 날인데도 살짝 들어오는 빛에 인상을 구겼다. 괜히 화창한 게 부담스러웠다.

‘나갈 힘도 없는데...’

까무룩 쇼파에서 낮잠을 잤다. 어떤 꿈을 꾼 것 같다. 내가 환히 웃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뛰기도 하고, 깔깔대며 웃기도 했다. 모처럼 깨기 싫은 꿈이었다. 일어나니 남편이 퇴근하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모처럼 낮잠 잔 거야? 잘했어. 가끔 낮잠도 자야지.”

“아 왔어..? 고생했어..언제부터 잔 거지? 기억도 안 나네...”

“잘 자서 그래. 개운하게 자면 그렇더라. 이제 가끔 낮잠도 좀 자.”